가흥예술창고 3기 입주작가 결과보고 개인전 - 곳에 따라 불
Fire in Some Areas ─ Solo exhibition
가흥예술창고 Gaheung Art Studio, 2025. 11. 26 - 12. 6.
주최 충주문화관광재단
가흥예술창고 /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신대2길 37, 1F, 전시실 B
가흥예술창고 /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신대2길 37, 1F, 전시실 B
한혜수 개인전 《곳에 따라 불 Fire in Some Areas》 리뷰
금세기 회화: 예기, 불안, 징후
홍예지 미술비평가
우선 화가는 경계 없는 세상으로부터 볼 만한 것을 도려내어 테두리를 친다. 틀 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지 주의 깊게 선택된 것이며, 틀 밖의 것들과 다른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주목받아 마땅하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그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자체가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하기 때문에, 회화의 특별한 지위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 경우 회화는 권력과 결부되어 의뭉스러운 것이 되기 쉽다. 보는 자의 시선을 낚아채 틀 안에 고정시키는 회화는, (이것을 ‘시선의 강탈’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동시에 시야 밖으로 밀려난 무엇을 은폐하고, 그것과 우리를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므로 회화적 선택에는 항상 배제가 뒤따른다.
다른 한편, 화가는 이면을 들추는 사람이다. 남들은 잘 보지 않는 것, 숨겨진 장소, 잊힌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제일 보기 싫어하는 우리 자신의 모순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자다. 이때 회화의 프레임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무의식의 신호가 되며,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는 임계 영역을 가리킨다.
한혜수의 그림은 그 자체로 프레임인데,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포함하고 있는 중첩된 구조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림 안에는 여러 개의 프레임 사이를 넘나드는 날개 달린 존재들(나비, 나방, 하루살이, 새 등)과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들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프레임을 공격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유유히 빈 공간을 오가면서 프레임의 견고함과 완전성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배경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거센 파도는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킨다. 프레임 안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안온한 세계, 그리고 프레임 밖에서 휘몰아치는 각종 위험과 사건 현장들은 단순히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병치되어 있으며, 이미 언제나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우리가 한혜수의 그림 안에서 보는 것은 이 세계의 실상이며, 세계의 한쪽 면만 보기로 선택함으로써 놓쳤던 수많은 진실이다. 이 화면들에는 프레임의 안과 밖이 모두 담겨 있고, 밖으로 추방되었던 것들이 시시각각 안으로 침투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간에,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이편과 저편, 이쪽 끝과 저쪽 끝을 같이 놓고 볼 때 비로소 온전한 시야가 확보된다.
한혜수는 프레임으로서 회화가 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하게 되는 것을 동시에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화면 안에서 이 사실을 메타인지적으로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을 작동시킨다. 프레임 속의 프레임, 가림막 앞뒤의 세계, 빽빽한 수풀 속에서 엿보는 눈, 곳곳의 불 -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재난과 불행, 가까스로 지켜 내는 일상의 행복이 어둠과 빛처럼 공존하는 세상을 그린다. 이 상반된 세계의 면모는 동시다발적이며, 서로 얽혀 인과의 흐름을 생성하고, 무엇보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한혜수는 그림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 사실을 아우르는 다층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각각의 요소가 대변하는 진실은 동등한 위상을 지녀야 한다. 기계적인 배치나 비중 설정이 아닌, 직관적인 연결과 강약의 조율로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
한혜수의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에 서린 감정은 슬픔이나 명확한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건을 먼저 감지한 자들 특유의 미세한 떨림, 일종의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에 가깝다. 눈빛은 멀리 향하지만 어딘가에 고정되지 않고, 마치 지금 여기에 없는 무언가를 본 듯 흔들린다. 이 표정들은 이미 파국을 경험한 자의 체념이 아니라, 파국의 가능성을 견디는 얼굴, 즉 재난과 일상의 경계에서 숨을 고르는 존재의 초상이다. 이 세계에서 인물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곧’이라는 시간 속에서 서늘하게 살아 있으며, 감정은 아직 말로 굳어지지 않은 채 표면 위로 떠오른다.
이 예민한 감정의 결은 전시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손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된다. 뻗어 있는 손, 허공을 더듬는 손, 서로를 향하지만 끝내 닿지 못한 손, 그리고 마침내 무엇인가를 움켜쥐는 손. 이 손들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는 마지막 감각 기관처럼 보인다. 재난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화면 속에서 손은 행위가 중단된 흔적이자,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의지의 잔여물이다.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프레임이 위태롭게 흔들릴수록, 손은 더 선명해진다. 그것은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시의 마지막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 모든 서사의 응답처럼 읽힌다. 손은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어떤 것을 감싸 쥔다. 그것은 거대한 승리도, 구원의 약속도 아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한 줌의 빛, 끝내 놓지 못한 삶의 온기에 가깝다. 빛을 쥔 손은 불확실한 세계의 결말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임박한 종말에도 여전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 애쓰는 마지막 인간들 -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서로의 손을 붙들고 있는 존재들의 서늘하지만 따뜻한 체온을 떠올리게 한다.
한혜수의 회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독특한 온도를 획득한다. 재난의 파도와 소멸의 조짐이 밀려오지만, 화면은 그 파국의 총량보다 남아 있는 감정의 잔량을 더 오래 비춘다. 세계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다. 다만 어떤 시선, 어떤 손길, 어떤 관계. 그것이야말로 이 전시가 붙들고 있는 마지막 불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노트
한혜수
한혜수
'곳에 따라 비'라는 일기예보가 있다. 똑같이 날은 흐려도 어딘가는 비가 오고 어딘가는 오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최근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처럼, 불행과 행복, 재난과 경사는 '곳에 따라' 불현듯 찾아온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징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서 ‘불’을 사용했다. 촛불과 산불, 바다 위의 등불, 도시에서 번지는 화재처럼 우리 사회에는 ‘곳에 따라 불’이 존재한다. 나의 작업에서 불은 위로와 파괴, 희망과 경고가 동시에 얽혀 있는 상징물이 된다. 이것은 내가 줄곧 사용했던 '파도'와 맥락을 함께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작용하는 이중적인 면을 뜻한다. 충주에서 지내는 동안, 아름답고 고요한 자연 경관에 감탄하면서도 늘 그 안쪽에 소멸의 기척이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따라왔다. 허름하거나 부서진 집들, 공사가 중단된 폐건물, 무성히 풀이 자라나 가려진 구조물들이 능선이 아름다운 산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기묘하다. 내가 마주하는 풍경과 사건의 반대편을 함께 상상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옛날의 어느 날로부터,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저 슬프지만은 않게 되었다.
길고 긴 우주의 시간 속에서 잠시 존재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와 마주한다. 전쟁과 재난은 형태를 바꾸어 되풀이되고, 풍요와 발전 속에서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은 선이라고 믿었던 선택들의 끝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지 반문하게 한다. 우리는 그 끝을 예측할 수 없고, 진실에 닿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매일 마주하는 풍경과 그 이면을 상상하며, 세계의 구조와 균열을 더듬어본다.